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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로테르담항: 자율운항 선박, 실제 항만 운영에 도전

시험장을 넘어, 일반 선박 사이를 운항하다

자율운항 선박이 정해진 항로를 따라 움직이는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주변 선박이 없는 통제된 수역이라면 선박의 위치를 인식하고, 미리 설정된 경로를 따라 운항하는 기술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항만은 다릅니다. 대형 상선과 내륙수로 선박, 예인선과 작업선이 끊임없이 오가고, 선박마다 속도와 목적지가 다릅니다. 부두에서 출항하고 좁은 수로를 지나 다시 접안하는 과정에서는 주변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따라서 자율운항의 실질적인 경쟁력은 선박을 움직일 수 있는지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실제 운항환경에서도 안전하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지에서 확인됩니다.
2026년 6월, 유럽 최대 항만인 로테르담항에서는 이를 검증하기 위한 실증이 진행됐습니다.
내륙 컨테이너선 MS Letitia가 일반 선박이 운항 중인 항만에서 스스로 부두를 출발해 강과 항만 구간을 지나 다른 터미널에 접안한 것입니다. 자율운항 기술이 폐쇄된 시험장을 벗어나 실제 물류가 이루어지는 항만 안으로 들어온 순간이었습니다.
터미널에서 터미널까지, MS Letitia의 자율운항
이번 실증은 로테르담항만공사(Havenbedrijf Rotterdam)가 주도하는 유럽 MAGPI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됐습니다.
HTS Group이 운영하는 MS Letitia는 로테르담 마스블락테(Maasvlakte)의 아말리아하번(Amaliahaven)에서 출발해 유로포트(Europoort)와 니우에 바터베흐(Nieuwe Waterweg)를 거쳐 발하번(Waalhaven)까지 이동했습니다. 별도로 차단된 시험수역이 아니라, 평소와 같이 선박이 오가는 실제 항만과 하천 구간을 운항했습니다.
선박은 운항 과정에서 이안부터 항로 주행, 주변 선박 회피, 목적지 접안까지 일련의 과정을 자율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자율운항 시스템은 선박의 위치와 예정 항로를 바탕으로 운항을 제어하는 동시에 주변 환경을 지속적으로 관찰했습니다. 다른 선박이 접근하거나 예상 항로와 충돌할 가능성이 발생하면 이를 감지하고, 필요한 경우 회피 동작을 수행했습니다.
즉, 단순히 미리 입력된 선을 따라가는 항로 추종에 그치지 않고, 주변 교통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하며 운항을 이어가는 과정을 실제 환경에서 검증한 것입니다.
실증에 참여한 Argonics는 이번 운항에 자동 항로 생성, 선박 조종, 항로 추종, 충돌회피, 자동 이·접안 기능이 통합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각각의 기능을 개별적으로 시험한 것이 아니라,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하나의 운항 흐름 안에서 연결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닌 ‘운항 전 과정’의 검증
이번 실증의 가장 직접적인 성과는 MS Letitia가 실제 항만 교통 속에서 터미널 간 운항을 완료했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자율운항 실증은 특정 기능이나 제한된 구간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정한 속도로 항로를 유지하거나, 장애물을 감지하거나, 원격으로 선박을 조종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실제 운항은 하나의 기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부두를 떠날 때는 선박의 움직임과 주변 시설을 정밀하게 제어해야 하고, 항만과 강을 운항할 때는 다른 선박의 위치와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며 안전하게 접안해야 합니다.
MS Letitia는 이번 실증에서 이러한 과정을 하나의 여정으로 연결했습니다. 특히 일반 선박이 운항하는 가운데 주변 교통을 감지하고 필요한 회피 동작을 수행했다는 점은, 자율운항이 통제된 환경에서 실제 운영환경으로 한 단계 이동했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를 곧바로 ‘완전 무인운항’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실증 당시 선장은 선박에 탑승해 최종적인 운항 책임을 유지했습니다. 자율운항 시스템이 항해와 의사결정을 지원했지만, 필요할 경우 선장이 언제든 개입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이는 자율운항 기술이 선원을 즉시 대체하는 방향보다, 우선 선원의 판단을 지원하고 반복적인 조종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상적인 운항은 시스템이 담당하되, 복잡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사람이 판단하고 책임지는 방식입니다. CMA CGM의 AI 에이전트가 정형화된 고객 요청은 처리하면서 복잡한 사례를 담당자에게 넘기는 것처럼, 선박 운항에서도 자동화와 사람의 개입 지점을 함께 설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선박이 서로의 ‘다음 행동’을 알게 하다
로테르담항의 실증은 2026년 한 번의 시연으로 갑자기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MAGPIE 프로젝트는 2025년 10월에도 MS Letitia를 활용해 선박 간 운항 의도 공유(Intention Sharing)를 실증했습니다. 선박이 현재 위치와 속도만 전달하는 데서 나아가, 앞으로 이동하려는 항로와 속도를 다른 선박 및 선박교통관제시스템에 공유하는 방식입니다.
기존의 충돌예방 시스템은 주변 선박의 현재 위치와 이동 방향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움직임을 추정합니다. 그러나 상대 선박이 변침하거나 속도를 바꾸면 기존 예측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면 선박이 예정된 항로와 운항 의도를 서로 공유하면, 각 선박과 관제센터는 상대방이 어디로 이동하려는지 미리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자율운항 선박 역시 주변 선박의 계획을 반영해 보다 안정적으로 항로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율운항이 선박 한 척의 센서와 소프트웨어만으로 완성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자율운항 선박이 늘어날수록 선박과 선박, 선박과 항만, 선박과 관제센터 사이에서 데이터가 원활하게 교환돼야 합니다. 서로 다른 기업이 개발한 시스템이 같은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통신방식과 데이터 기준도 정립되어야 합니다.
2025년에는 선박들이 서로의 의도를 공유하는 기반을 시험했고, 2026년에는 이를 바탕으로 이안과 운항, 충돌회피, 접안까지 연결된 자율운항을 실제 항만에서 검증한 것입니다.
항만이 자율운항의 ‘테스트베드’가 되다
이번 사례에서는 선박뿐 아니라 로테르담항의 역할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율운항 기술을 실제 항만에서 시험하려면 선박 운영사와 기술기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항만의 안전관리 기준과 선박교통관제, 터미널 운영, 다른 선박과의 통신, 실증을 위한 제도적 허용이 함께 마련되어야 합니다.
로테르담항만공사는 MAGPIE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항만을 새로운 기술을 시험하고 적용하는 실증공간으로 제공했습니다.
MAGPIE에는 45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으며, 자율운항을 포함해 청정에너지, 디지털화, 지속가능한 물류와 관련된 10개 실증과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 항만에서 적용한 뒤 확산 가능한 운영모델을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실증 결과는 상용 제품에도 반영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참여기업인 Alphatron Marine, Argonics, Argonav는 이번 실증에서 검증한 요소를 내륙선박용 항해지원 제품에 적용할 계획입니다. 선박의 위치와 항로 유지를 지원하는 argoPositionPilot은 고정식 프로펠러와 타를 사용하는 선박을 대상으로 이미 제공되고 있으며, argoRadarPilot에는 선박의 운항 의도를 표시하고 충돌 위험을 탐지하는 기능이 반영될 예정입니다.
실증이 일회성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선박에도 단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항해지원 기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율운항으로 내륙물류 운영방식의 혁신을 꿈꾼다
로테르담항이 자율운항 내륙선박에 주목하는 이유는 새로운 선박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로테르담항에서 처리된 컨테이너와 벌크화물은 내륙수로와 철도, 도로를 통해 유럽 각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이 가운데 내륙수로 운송은 도로의 혼잡을 줄이고, 대량의 화물을 에너지 효율적으로 운송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화물량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내륙수로 운송의 비중을 유지하고 확대하려면 운항의 유연성과 효율성, 신뢰성을 높여야 합니다. 로테르담항만공사는 자율운항이 새로운 물류 운영방식을 가능하게 하고, 내륙운송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터미널 간 정기적인 단거리 운송은 항로와 업무가 비교적 반복적입니다. 이러한 구간에 자율운항이나 고도화된 항해지원 시스템을 적용하면 운항 스케줄을 보다 유연하게 구성하고, 선원의 조종 부담을 줄이며, 운항 데이터를 기반으로 항로와 속도를 지속적으로 최적화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효과는 자율운항 시스템을 선박에 설치하는 것만으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터미널의 작업 일정과 항만 교통정보, 선박의 운항계획이 함께 연결되어야 하며, 장애나 통신 두절, 예상하지 못한 선박의 움직임이 발생했을 때 대응할 운영기준도 마련되어야 합니다. 결국 자율운항은 선박 자동화 프로젝트이면서 동시에 항만과 물류체계 전체를 연결하는 운영 혁신 프로젝트입니다.
Lessons Learned: 자율운항은 실제 운영환경에서 완성된다
로테르담항의 사례는 자율운항 기술이 시험선을 움직이는 단계에서 실제 물류환경 안에서 역할을 검증하는 단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교훈은 자율운항 기술은 개별 기능이 아니라 전체 업무 흐름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항로 추종이나 장애물 감지 기능이 각각 잘 작동하더라도, 이안부터 운항과 회피, 접안까지 안정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실제 현장에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MS Letitia의 실증은 여러 자율운항 기능을 터미널 간 하나의 운항 과정으로 통합해 시험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자동화 수준과 사람의 책임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실증에서도 선장은 최종 책임자로 남아 언제든 운항에 개입할 수 있었습니다. 가까운 미래의 자율운항은 선원을 한 번에 없애기보다, 시스템이 정상 운항과 반복적인 판단을 지원하고 사람이 예외 상황과 최종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형태로 확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마지막으로 자율운항은 선박 한 척만의 기술로 구현되지 않습니다.
선박이 주변을 인식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선박의 예정 항로와 항만의 교통정보를 공유받고 관제센터 및 터미널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항만당국과 선사, 선박 운영사, 터미널, 기술기업이 함께 데이터와 통신, 안전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로테르담항이 보여준 것은 단순히 스스로 움직이는 선박이 아닙니다.
선박과 항만, 관제시스템과 터미널을 하나의 운항체계로 연결하고, 실제 항만을 기술의 시험장으로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자율운항의 다음 경쟁은 선박이 혼자 얼마나 잘 움직이는가보다, 수많은 선박과 사람이 함께 일하는 실제 항만 안에서 얼마나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